2020/독서

전쟁은 여자의 얼굴을 하지 않았다 - 스베틀라나 알렉시예비치 (2020.07.12)

170841 2021. 5. 25. 20:27

# 한줄 평

소름 끼치는 이중 잣대. 하지만 그를 겪었음에도 이들은 과거로 되돌아갔을 때 같은 선택을 할 것을 알기에.

 

전쟁은 여자의 얼굴을 하지 않았다(7.12).pdf
2.26MB

 

 

 

전쟁은 여자의 얼굴을 하지 않았다

전쟁 회고담에서 철저히 배제되어 온 여성들의 이야기를 담아내다!2015년 노벨문학상 수상작가 스베틀라나 알렉시예비치의 『전쟁은 여자의 얼굴을 하지 않았다』는 전쟁에 참전했던 200여 명의

book.naver.com

 

 

# 책을 읽고 나서

   6월 20일에 토플을 보고 그 시험에서 원하던 결과를 받았다는 것을 확인한 7월, 나에게 나름의 휴식을 주겠다고 책을 빌려 보기 시작했다. 데미안을 시작으로 꽤 많은 책을 읽었는데, 본가로 내려가면서 글을 쓸 시간이 부족해 아이패드에 필사만 하고 방치해 뒀다. 12월 12일에 다시 서울로 올라와 자취를 시작하면서 조선일보 1개월 구독을 시작했고, 머리 깨져 가며 취준생의 마음을 미리 경험해 보고 있다. 세상은 복잡하게도 돌아가고 있구나 싶다.

   오늘부터 기억을 더듬어 독후감을 적을 책은 총 7권이다. 7월 12일부터 8월 16일까지 가장 더웠던 한 달 동안 읽었던 책의 감상을 가장 추운 12월에 기록하다 보니 그때의 감상이 완전히 살지만은 않을 것 같다. 그래도 필사했던 것을 다시 적다 보면 당시의 나로 다시 돌아가는 느낌은 날 것이다. 그 느낌에 기댄 채 독후감을 어렵게나마 작성해 보려고 한다.

   아이패드에 필사했던 부분을 옮겨 적다 보니 그때의 기억이 다시 새록새록 난다. 마음을 울렸던 문장을 정확히 기억하지는 못하겠지만, 기억나는 장면들이 몇 가지 있다. 아무것도 모르는 소녀들이 단순히 애국만을 이유로 관공서로 달려가 파병되고 싶다고 조르고 졸라 파병이 되었다던 것, 그 전쟁터에서 사랑을 구애하던 자를 직접 묻어야 했던 것, 전쟁터에서 사랑을 하고 아이까지 낳았으나 결국 전쟁이 끝나고 버려진 것, 전쟁터에서는 '누이'라며 그렇게 잘 챙겨 주던 남자들이 전쟁이 끝나자 바로 다른 얼굴을 보였다는 것, 결국 승기를 잡고 독일에 도달했을 때 소련의 모습과 다른 독일을 마주한 그 자체의 충격, 소련의 간호병이었음에도 불구하고 부상한 독일군을 직접 데려와 치료했던 것. 그 외에도 인상적인 많은 장면들과 그 사람들만의 전쟁 이야기가 있었으나 내 기억에서 떨어지지 않는 장면들은 이것들이다. 순서는 두서없다. 필사했던 부분 중 있는 장면도 있고, 필사하지 않은 부분 중에 있는 장면도 있다. 필사하지 않았던 부분이라고 하더라도 내게 감명을 끼치지 못한 것은 아니다.

   아무것도 모르는 소녀의 신분임에도 단순히 소련이 열세에 있다는 이유만으로 '군인'이 뭔지, '전쟁'이 뭔지 모르는 상태임에도 불구하고 파병을 시켜 달라며 관공서에 가서 투쟁했다는 이야기를 들려준 사람이 있다. 의대를 졸업하면서, 항공대를 졸업하면서 대위와 같은 높은 직급으로 파병된 사람들의 이야기도 충분히 인상적이었으나 이 소녀들의 무모함은 다른 부분에서 충격을 주었다. 전쟁이라는 것을 제대로 알지도 못하는 소녀들이 결국 파병을 얻어 내어 전쟁터로 가는 기차에 탑승했을 때, 소풍을 가는 기분이었다고 표현했기 때문이다. 그런 소녀들은 소련 곳곳에 있었을 것이지만 자신들의 목소리를 잃었다. 그들은 '나라를 지키겠다'는 일념 하에 전쟁터로 나갔지만 그 전쟁터에서 자기 역할을 할 때까지 얼마나 많이 차별당했을지, 그 이전에 목숨을 잃었을지 알 수 없다. 전쟁이 끝나고 쫓겨나 목숨을 잃었을지도 모른다. 그들은 소련의 패배를 자신의 패배로 받아들일 정도의 애국자였으나, 소련군에게 '병사'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었을 테니 말이다.

 

   작가는 전쟁터에서의 로맨스도 이야기에 담았다. 전쟁터에서 돌아온 여자들이 제대로 된 대접을 못 받는 이유이기 때문에 빼고 적는 것이 유리할 수도 있었으나, 작가는 다양한 여자들의 이야기를 담고 싶어 했다. 작가가 취재를 위해 탄 기차에서의 군인조차 당시 전쟁에 파병되었던 여자 군인에 대하여 차별적인 시선을 가진다. 군인으로서 존중하는 듯하다가도 결국 인간으로서의 취급은 않는 것이다. '국민'으로서 나라를 지켰을 뿐지만, 여자들은 그렇게 자신이 지켜낸 국가를 잃었다. '국민'들이 그들을 '연애나 하러 간 여자'쯤으로 취급했기 때문이다. 책이니 연애라고 돌려 말했겠지만, 얼마나 심한 이야기를 들었을지 알 수 없다. 남자뿐 아니라 여자도, 남뿐만 아니라 그들의 가족도 그들을 그렇게 취급했다.

   현재 우리나라에서 여자가 큰 뜻을 갖고 '남자들의 전유물'이었던 분야에 도전할 때 듣는 말들이 겹쳐졌다. 딱히 남의 이야기가 아니었다. 몇십 년이 지나도록 그들은 여전하고, 우리는 여전하다. 우리들의 시선조차 고쳐지지 않는다. 혹자는 '실제로 그런 사람들이 있다'라고 말할 것이다. 맞다. 이 책에서도 실제로 '불륜'을 저지르고 아이까지 낳아 기른 여자의 이야기가 나온다. 하지만 불륜은 혼자 저지른 것이 아니다. 그 여자에게만 돌을 던질 수 없다. 그렇다고 해서 실제로 그런 여자와 남자에게 '공평하게' 돌을 던진다고 하더라도 우리는 공평할 수 없다. 이런 사건들이 소수임에도 불구하고 이 소수의 사건들을 방패 삼아 여자에 대한 차별적인 시선을 거두지 않기 때문이다. 공평하게 남자에게도 돌을 던졌지만, 남자들에게는 차별적인 시선이 없었던 상태이고 여자들에게는 있었던 상태이다. 그들의 잘못을 단순히 '여자이기 때문에' '묻지도 따지지도 말고 덮어' 줘야 한다는 이야기가 아니다. 소수의 사건을 들먹이며 '봐라, 이래도 너희가 연애하러 전쟁터 간 게 아니냐?'며 제대로 된 대접을 해 주지 않는 것을 막아야 한다는 것이다.

 

   전쟁터에서는 '누이'라며 같이 동고동락하였으나 전쟁이 끝나고는 바뀌어 버린 모습에 충격을 받았다는 이야기도 있었다. 차라리 전쟁 때는 자신을 따뜻하게 대해 줬었다고 할 정도였다. 그들이 아는 '여자'와 다르기 때문이었다. 전쟁터에서 군인이었던 여자들은 어색하게나마 치마를 입고, 구두를 신어야만 여자가 될 수 있었다. 전쟁터에서 군인이었던 남자들은 자신들이 받은 훈장을 자랑스레 내놓아도 남자였다. 그들은 여전히 군인이었다. '군인'이었던 여자들과는 결혼하지 않겠다는 '군인' 남자들도 많았다. 결국 그들이 결혼하기 바라는 것은 '여자'였던 것이다. 군인이었던 여자들은 '군인'과 '여자' 사이에서 갈팡질팡했다. 받아야 할 대접을 받지 못했고, 그나마 받은 훈장도 '스스로' 숨겼다. 사회가 여자에게 요구하는 것은 남자에게 요구하는 것과 너무 달랐던 탓이다.

나는 전쟁 영웅이었고, 더욱이 전선에서 왔다는 이유로 조롱당할 줄은 꿈에도 몰랐어. 우리가 얼마나 많은 위험을 겪었는데, 얼마나 많은 어머니의 아들들을, 아내들의 남편들을 구했는데, 난데없이 그럴 줄은······

 

스스로 훈장을 숨기던 여자들 중 일부는 지금에 도달해서야 자신이 받은 푸대접이 당연하지 않았던 것 같다며 돌이켰다. 요즘 '삶은 전쟁'이라고 한다. '개인적으로 똑똑한 여자는 무섭다'는 남자들이 겹쳐진다. 전쟁터 같은 삶을 살던 여자들이 갈팡질팡하다 결국 자신을 깎아내리고 우울증에 빠진다. 남자들은 여자를 탓하고, 여자들도 여자를 탓한다. 이렇게 되는 것이 비단 여자들만의 탓일까 궁금하다.

   제일 기억에 남는 장면은 거의 마지막에 나오는 독일에 도달했을 때이다. 이 장면 때문에 이 책을 다시 읽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 책은 고등학생 때 이미 한 번 읽었던 책인데, 이번 여름에 데미안을 읽다가 이 장면이 떠올라서 지인에게 수소문해 읽게 되었기 때문이다.

도무지 이해가 안 되더라고. '이렇게 잘들 살면서 대체 왜 전쟁을 일으킨 거지?' 우리는 좁아터진 움막 같은 곳에 살지만, 자기들은 하얀 식탁보까지 깔고 살면서. 커피잔에 커피도 마시면서······ 나는 그런 커피잔은 박물관에서나 봤어. 그런 커피잔들은······

 

정확히 이 구절이다. 독일은 산업혁명 이후 자본주의의 한계에 봉착하고 있었다. 식민지가 없으니 판매할 곳이 없어 물건은 쌓였다. 공장은 계속 가동되어야만 했고, 물건을 팔아야만 했다. 한정된 인원에서 많은 물자를 사용할 수 있는 방법은 전쟁이었다. 독일 국민들은 자신의 밥줄이 달린 사생결단이었을 수도 있으나, 국가 전체로 보면 결국 '더 잘 살기' 위해 전쟁을 일으킨 것이었다. 소련 병사들은 일어나 버린 전쟁에 대항하면서 '그들도 우리와 같은 처지'일 것이라 생각했으나 그것이 깨져 버린 것이었다. 살기 위해 전쟁을 했던 그들의 허탈함은 어느 정도였을지 가늠조차 되지 않는다.

 

   작가는 전쟁이 폭력적이고, 잔인하다는 등의 점에서 지극히 '남성적'이기 때문에 여자들이 지워졌다고 한다. 그 예시로 전쟁터에 나가서까지 자수를 두며 '여자의 일'을 찾아 하려고 했다는 것을 든다. 그것이 '여자들의 전쟁'이었다고 표현하기도 한다. 하지만 나는 조금 다른 관점으로 보고 싶다. 이 여자들은 어떤 남자 군인보다도 '군인'이었다. 전쟁이 일어났고, 일어나는 많은 국가에서 여자들의 성 착취 문제는 빠지지 않고 나타난다. 우리나라는 위안부 문제로 피해를 입었지만, 그와 동시에 월남전에서 베트남 여자들에게 성을 착취해 댔다. 이에 대해 '베트남 여자들은 우리가 지켜 주는데도 고마움을 모른다'고 표현하는 군인도 있었다고 한다. 이 책의 여자들은 어땠던가? 국가를 지키겠다는 일념 하나만으로 아무것도 모르지만 군대에 가겠다고 투쟁했다. 국가와 국가끼리의 싸움일 뿐, 사람은 죄가 없다며 부상한 독일 군사를 치료했다. 독일군의 부탁을 항상 가슴에 품고 다녔다. '여자'로 살아 오기만을 강요당했음에도 불구하고 군인이 되어야 했을 때 누구보다 빠르게 적응하고 전쟁터에서 승리를 이끌어낸 주역임에 분명하다. 이 여자들이 전쟁터에서와 돌아와서 '여자'가 되었다는 이유만으로 여자들은 남자들과 다른 전쟁을 한 것일까? 아니다. 그들은 모두 같은 전쟁을 치렀다.

   다른 게 있다면 남자들은 단 한 번의 전쟁을 치러도 되었다면 여자들은 남은 생까지도 전쟁을 치르며 살아야 했다는 점이다.